유리, 타일, 벽지, 마루, 카펫 등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재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재료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하면 과연 한 항목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렇게 여러 재료들의 종류를 알아갔던 지난날에 한 번씩은 ‘도대체 이런 것은 누가, 왜 개발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세상에 이런 것까지 공간에 필요할까?’라는, 어느 정도의 당혹스러움이 동반된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가장 크게 불러일으킨 재료 중 하나가 ‘유리블록(Glass Block)’이다. 처음 샘플로 받은 블록 한 장을 마주했을 때 기존에 알고 있던 유리와는 다른 투박한 덩어리감, 쉽게 들리지 않는 무게, 균일하지 않은 표면 등 무엇 하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리블록은 두 개의 성형된 유리를 접합하여 내부에 밀폐된 중공층을 만든 블록 형태의 재료다.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일반 유리에 비해 열전달을 줄일 수 있고 균일하지 않은 표면은 오히려 다양한 패턴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시야는 차단하면서도 빛은 투과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건물의 외벽뿐 아니라 실내 공간에도 다양하게 사용되는 이 재료의 조상은 19세기, 선박의 갑판 아래로 빛을 유입하기 위해 사용했던 데크 라이트(Deck Light)와 도시의 보도 아래 지하공간을 밝히기 위해 설치했던 볼트 라이트(Vault Light)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들의 주요 목적은 단연 ‘채광’이었다. 다만 현재의 유리블록과 달리 당시에는 내부가 비어있지 않은 통유리(Solid Glass)가 사용되었다.
도시 아래 지하공간을 밝힌 볼트 라이트. / 출처. circleredmont 홈페이지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오늘날 유리블록의 먼 조상이라 할 만한 속이 빈 유리블록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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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발명가 귀스타브 팔코니에(Gustave Falconnier)가 개발한 이 블록은 유리를 틀 안에서 불어 성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일반적인 벽돌처럼 모르타르를 사용해 쌓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유리가 창에 끼워지는 판재를 넘어 벽을 구축하는 하나의 단위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팔코니에 블록은 여러 건축물에 사용되었는데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빌라 슈보브(Villa Schwob)에서 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에서는 속이 빈 유리의 특성을 활용해 온실을 만드는 재료로 소개되기도 했다.
팔코니에 블록으로 만들어진 시카고 만국박람회 온실. / 출처. chicagology 홈페이지
팔코니에의 블록 이후 유럽에서는 다양한 유리블록에 대한 시도가 이어졌으나 유리블록이 보다 본격적인 건축재료로 발전한 것은 1930년대 미국에서였다. 유럽에서 개발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동시에 현지에서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유리블록은 실험적인 재료에서 。차 실제 건축에 사용할 수 있는 산업제품으로 변화했다. 특히 1935년 오웬스 일리노이(Owens-Illinois)가 출시한 인설룩스(Insulux)는 현대적인 유리블록의 형태를 확립하는 중요한 전환。이었다. 동일하게 성형한 두 개의 유리를 맞붙여 밀봉함으로써 내부에 빈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리블록과 기본적인 원리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 시기 유리블록의 역할에도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실내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는 방식에서 나아가 밤이 되면 내부의 빛이 밖에도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방식으로 유리블록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상.이나 주유소 같은 상업 공간에서 조명과 결합한 유리블록은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등불처럼 만들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만드는 하나의 방식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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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블록을 사용한 텔 아비브의 한 주거공간. / 출처. talfish 홈페이지
이러한 유리블록의 가능성을 현대건축에서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는 도쿄 긴자의 메종 에르메스(Maison Hermès)를 들 수 있다. 2001년 준공된 이 건물은 지금도 긴자에서 손꼽히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지상 10층 규모의 외관 전체를 유리블록으로 감쌌으며, 이를 위해 약 13,000개의 맞춤형 정사각형 유리블록이 제작되었다. 건물의 곡면 모서리에는 그 형태에 맞추어 별도로 제작한 더 작은 유리블록이 사용되었다. 이 블록의 표면에 형성되어 있는 질감은 외부에서 매장 내부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 건물이 반투명한 막을 한 겹 두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연출한다. 이로 인해 낮에는 햇빛을 받은 유리의 탑이 은은하게 빛나며 그 뒤에 자리한 매장 내부를 희미하고 신비롭게 암시한다. 하지만 밤이 되어 내부에 불이 켜지면 관계가 역전된다. 실내의 빛이 수많은 유리블록을 통과해 밖으로 번져 나오면서 건물은 어두워진 긴자 거리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처럼 변한다. 또한 이 유리블록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음으로써 한정된 매장 내부가 실제보다 넓게 느껴지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이곳의 유리블록은 지진이 잦은 일본이라는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유리블록을 지지하는 프레임에 약 4mm의 움직임을 허용하도록 설계되었다. 각각의 모듈이 미세하게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지진으로 발생하는 변위를 흡수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유리블록이라는 오래된 재료가 현대의 구조기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을 획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도쿄 긴자의 메종 에르메스. / 출처. archdaily 홈페이지
유리블록 덕에 밤이 되면 거대한 빛의 기둥처럼 보인다. / 출처. RPBW 홈페이지
유리블록은 또한 보다 일상적인 주거 공간에서 사람들의 생활과 맞닿아있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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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지로나(Girona)의 산타 클라라(Santa Clara) 건물을 주거시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중앙에 새롭게 조성한 중정을 감싸는 재료로 유리블록이 사용되었다. 여러 층을 관통하는 중정에 설치된 유리블록은 자연광을 각 층 깊숙이 확산시키면서 전체 공간에 밝고 개방적인 인상을 만든다. 동시에 각 세대와 공용 통로에 빛을 전달하면서도 서로의 시선은 적절하게 차단한다. 투명한 판유리였다면 확보하기 어려웠을 사생활과 개방성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유리블록은 유리가 가진 현대적인 이미지와 빛의 투과성, 공간적 개방감을 유지하면서도 시선을 조절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오늘날 실내 공간에서도 여전히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 지로나 산타 클라라 건물. / 출처. arquitecturaviva 홈페이지
스페인 지로나 산타 클라라 건물. / 출처. arquitecturaviva 홈페이지
유리블록의 시작은 단순했다. 빛이 들지 않는 곳에 빛을 보내는 것, 즉 채광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근현대 건축의 발전 과정에서 공간 안으로 빛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법이 실험되며 유리블록 역시 끊임없이 변화했다. 그리고 이 발전은 재료 자체의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조적벽에서 철골구조로 건축의 구축 방식이 변화하고, 벽이 반드시 건물의 하중을 지탱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유리블록 역시 더 넓은 면적과 다양한 형태로 사용될 가능성을 얻었다. 처음에는 벽의 일부를 채우는 재료였던 것이 .차 벽 전체가 되고, 때로는 건물의 입체적인 매스와 외피 자체를 형성하는 재료로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유리블록의 역사는 결국 빛에 대한 요구와 재료기술, 그리고 건축의 구축 방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재료를 변화시켜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도대체 이런 것은 누가, 왜 개발했을까’라는 생각은 한 재료의 존재를 설명하기에 너무 가벼운 질문이었다. 처음 손에 들었을 때 그저 투박하고 무겁게만 느껴졌던 유리블록 한 장의 뒤에는 이처럼 한 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 동안의 수많은 시도와 기술의 발전, 시대의 변화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셈이다. 팔코니에